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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유정, 2

by 핫PD 201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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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고 내 아내와 정임을 번갈아 보아 가면서 말하오.
무얼 잘해 준 게야 있나요.』하고 내 아내는 겸양의 수삽한 빛을 보이며,
『정임이는 원체 얌전하니까 도무지 말을 일리지 아니하였답니다. 되려 순임이가 말을 일리지요.』하고 순임을 돌아봅니다. 다들 순임을 보고 웃었소. 나도 하도 유쾌하여서 소리를 내어 웃으며,
『우리 순임이는 남자 칠 분에 여자 삼분이어든. 하하하하.』
하고 농담을 하였소. 또 다들 웃었소. 그러나 나는 순임의 낯빛이 파랗게 질리고 눈이 샐쭉하는 것을 보았소. 그리고 내 아내의 낯빛에도 불쾌한 빛이 도는 것을 보았소. 나는 「아차」하고 놀랐으나 엎지른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소. 이때에 정임은 삼지창을 들다가 도로 놓으며 고개를 숙이는 모양이 내 눈에 띄었소. 아 과연 정임은 미인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내 몸에 찌르르 하고 돌았소. 내 아내가 작별 선물로 지어 준 진달래꽃 빛나는 양복과 틀어 올린 검은 머리는 정임을 갑자기 더 미인을 만든 것 같았소. 그 투명한 살이 전깃불에 비친 양은 참 아름다웠고 가벼운 비단 양복이 그리는 몸의 선, 그리고 고개를 푹 수그린 양은 말할수 없이 아름다왔소. 나는 처음 이렇게 아름다운 정임을 발견하였소. 다음 순간에 정임이가 혼란하던 어떤 감정을 진정하고 고개를 가만히 들어 정면을 정향 없이 바라볼 때에는 그 두 뺨에는 홍훈이 돌고 검고 큰 눈에는 눈물이 빛났소. 정임은 다시 고개를 숙여 하얀 목덜미를 보이며 소매 끝에 넣었던 손수건으로 두 눈을 잠간 눌러 눈물을 찍어 내었소. 어떻게도 가련한 동양적, 고전적 미인의 선인고! 리듬인고! 식당은 조용하였소. 사람들의 시선은 다 정임에게로 모였소. 저 자신으로, 감정으로 바쁘던 내 아내와 딸 순임의 시선도 마침내 정임에게로 돌아왔소. 나는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유쾌한 것, 모든 몸이 가뿐하던 것을 다 잃어버리고 머릿속과 가슴 속이 무겁게 막히는 듯함을 깨달았소.

나는 은 집게로 호두를 깨뜨리며 전신에 힘을 주어서 내 혼란한 감정을 눌러
버렸소. 내가 왜 이랬나 나는 지금도 모르오. 그러나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꼭 그때와 같이 머릿속과 가슴 속이 뻐근하여짐을 깨닫소.
『순임이는 음악을 배우나?』하고 교장 선생님이 입을 열었소. 이 말은 식당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소.
『네에.』하고 순임이가 들릴락말락하게 대답하였소.
사람들은 가까스로 무겁고 괴로운 감금에서 풀려나은 듯이 다시 유쾌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소. 나는 이때에 이 교장의 현명한 처치를 무한히 감사하고 속으로 칭앙하였소.
『가사과를 하라고 애 아버지는 그러시지만 음악을 배운다고 떼를 쓴답니다.』하고 내 아내도 이 자리의 중요성을 깨달아서 낯에 나타났던 불쾌한 빛을 거두고 웃고 말을 하였소.
『제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시키시지요.』하고 교장은 점잖게 말하였소.
『그것 보세요. 교장 선생님도 안 그러세요?』하고 내 아내는 후원자를 얻은 자랑으로 나를 보고 웃었소. 나는 순임이가 음악에 재주가 없는 것을 잘 아오. 원체 나와 내 아내가 둘이 다 도레미파도 분명히 구별할 줄 모르는 귀를 가진 사람들이니 그 속에서 음악가가 어떻게 나오겠소. 우리 조상 중에라도 음악가가 있다면 격대 유전이라도 될 수 있겠지마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우리 조상 중에는 시조 한 마디 부를 줄 알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소. 그래서 나는 순임이년이 음악을 배운다는 것을 반대하고 가사과를 배워서 중등 교원 자격이라도 하나 얻어 주려고 하였던 것이요.

이것을 내 아내는 내가 순임이가 음악과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순임이를
미워하는 까닭이라고만 해석하고 또 순임이년도 꼭 그렇게만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요. 『당신더러 피아노 사 달라고 안 할 터이니 순임이를 제 소원대로 음악과에 들어가게 해요. 정말 피아노가 필요하면 내가 친정에 가서 돈을 얻어라도 오리다.』
이 모양으로 내 아내는 나를 딸을 미워하는 아비로만 만들어 놓은 것이요.
『글쎄, 교장 선생께서 음악과로 가라시면 가려무나.』하고 나는 이 좌석을 유쾌하게 하기 위하여 즉석에서 허락하는 뜻을 표하였소.
『아버지 나 음악과에 가요?』하고 순임은 갑자기 희색이 만면하여 내게 물었소. 나는 오륙년래로 딸년한테 이렇게 기쁜 낯으로 말을 받아 본 적이 없었소.
『그래 내일 청원해라.』하고 나는 선선하게 대답하였소.
『나 음악과에 가!』하고 순임은 뛸 듯이 제 어머니와 정임을 바라보았소.
이날 밤의 만찬회는 이 모양으로 여러 가지 방면으로 큰 성공을 하였소. 불과
삼십원 돈이 이처럼 큰 효과를 내리라고는 예상도 못하였던 것이요.
이튿날 열시 급행에 우리 가족은 전에 없이 유쾌한 생각으로 정거장에서 정임을 전송하기로 되었소 나는 정임의 . 짐을 손수 들어다가 제 자리에 실어 주고 여행 중에 소용될 일체를 내가 생각나는 대로는 다 장만하여 주었소. 가령 풍침이라든지, 차중에서 볼 잡지라든지, 정임이가 몸이 약하기 때문에 혹시 배멀미나 아니할까 하여 인삼과 시식이라는 멀미약까지도 장만해서 휴대 약케이스에 넣어 주었소. 내가 친구의 여덟 살 된 딸을 데려다가 십여 년이나 길러서 이젠 먼길을 떠내 보내게 될 때에 이만한 일이야 아니할 수가 있소?

더구나 이번에 정임이가 내 집을 떠나면 인제부터는
독립한 생활을 하게 될 터이지 다시 내 집을 의뢰하지는 아니하게 될 것이요. 정임이가 방학이나 되면 혹시 집에를 올까, 올 필요는 무엇인가. 시집이나 갈 때가 되면 내가 주혼자가 될까, 그겐들 알 수가 있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요.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 정임이를 떠나 보내는 것이 영원한 이별 같아서 퍽 섭섭하고 또 정임이가 불쌍도 하였소. 그래서 나는 지갑에서 돈 삼십원을 꺼내어서 내 아내가 보지 않는 데서 정임의 손에 쥐어 주고,
『책값이라든지 용돈이 부족하거든 기별해라.』하고 따르르 하는 소리에 차에서 내리면서 나는 정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소. 이때에 나는 정임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깨달았소. 정임은 손수건을 눈에 대고 울음이 터진 것이요. 차는 떠났소. 정임의 수없이 고개를 숙이는 모양이 보였소. 내 눈에도 눈물이 고임을 깨달았소. 나는 이 눈물을 남의 눈에 뜨이지 아니하게 할 양으로 외면하고 눈을 씻었소. 정임이가 동경으로 가 버리니 집안은 편안하지마는 어째 쓸쓸하여진 것 같았소. 정임이가 집에 있더라도 별로 이야기가 있던 것도 아니었소. 안방 머릿방인 제 방에 박혀서 공부나 하고 혹시 저녁을 먹을 때에 온 가족이 한방에 모임이 있을 때에나 보았을 뿐이오. 그러하였건마는 정임이가 집을 떠나고 보니 구석이 비임을 아니 깨달을 수가 없었소. 딸을 시집보낸 것과도 달라서 아주 내 집과는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니까. 그렇지마는 가정 불화의 원인이 없어진 것만 다행이었소. 순임이는 첫째는 소원대로 음악과에를 들어갔고, 둘째로 이길 수 없는 경쟁자이던 정임이가 없어져서 좋아하고 날뛰고 내 아내도 그로부터는 짜증을 내는 일이 줄었소.

그리고 아내와 딸이 내게 대한 태도도 돌변하여서 정말 남편과 아비에게 하는 아내와

딸의 태도가 되었소. 예전 같으면 아침에 내가 집에서 나올 때에도 본체만체, 딸년이 책보 끼고 학교에 갈 때에도 본체만체할 것이지마는 정임이가 동경으로 가 버린 뒤에는 아내도,
『오늘 일찍 오시우?』한다든지,
『점심은 청년회 식당에서 잡수시구려.』하고 나를 아끼는 태도도 보이고, 순임이도,
『아버지, 나 바이올린 하나 사주우.』하고 책상 앞에 앉았는 내 어깨 뒤에 와서 어깨를 흔들고 어리광을 하게 되었소. 적은 딸년도 전보다 더 아버지, 아버지하고 따르게 되었소. 우리 가정은 근 십 년만에 처음 봄을 만난 것같이 화락하게 되었소. 나도 처음에는 정임의 존재, 아무 죄 없는 정임, 친구의 딸인 정임의 존재를 가정 불화의 원인을 만든 내 아내와 딸의 야박한 마음을 불쾌하게 생각하였지마는 오 이것이 인정이로구나 하고 깨달은 뒤에는 애초에 내 처치가 잘못되었다, 애초에 정임을 집에 둘 것이 아니었다 하고 뉘우쳤소.
그렇지마는 형. 그렇지마는 내 가슴속에는 정임이가 없는 것이 대단히 적막함을 어찌하오. 멀리 보낸 딸을 생각하는 아비의 정이겠지, 이렇게 생각하였소. 정임은 학교의 요구대로 고등 사범학교의 이과에 들어가서 박물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편지가 왔소. 그 후부터 여름 방학이면 그래도 내 집을 집이라고 돌아와서 내 가족과 같이 해수욕도 다니고 산에도 다녔소.

박물 공부를 한다 하여 정임은 조가비, 벌레, 풀꽃,
돌멩이를 줍기로 낙을 삼고 내 딸 순임은 음계도 잘 안 맞는 소프라노와 바이올린을 삐삐거리고 스스로 도취하고 있었소. 그리고 나는 내 아내와 딸의 심리를 알기 때문에 정임에게 대하여서는 전연 모르는 체를 하고 있었소. 그러나 정임의 적막해하는 양이 가끔 태도에 나타날 때에, 더구나 정임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서울 있을 때보다도 퍽 수척해진 것을 볼 때에 나는 불쌍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소.
『너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느냐?』하고 나는 어느 날 이렇게 묻지 아니할 수 없었소.
『아뇨, 아무렇지도 않습니다.』하고 정임은 잠간 웃었소.
『글쎄 그 애가 무척 수척했어.』하고 곁에 있던 내 아내도 걱정을 하였소.
『너 음식이 맞지 않는 게로구나. 공부를 너무 해서 그러냐. 집이라고 와서도 잘 먹이지도 못하고.』하고 내 아내는 정임을 위하여 고기나 생선을 사서 한두 가지 반찬도 더 놓아 주었소. 그렇지마는 그런 걱정을 하는 내 아내도 웬일인지 근래에는 건강을 잃어서 많이 수척하였소 그래서 여름이 . 되면은 나는 가족을 혹은 금강산에, 혹은 원산에, 석왕사에 몇 주일씩 피서를 시켰던 것이요. 내가 보기에는 내 아내나 정임이나 거의 같은 병이 아닌가 하오. 혹시 결핵성 병이나 아닌가 하오. 그래서 돌 지난 희(熙)놈을 어미 곁에 두는 것이 대단히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으나 신경이 날카로운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랄 수도 없었소.
이 모양으로 내 가슴속에는 아내의 건강에 대한 근심, 정임의 건강에 대한 근심, 또 젖먹이의 건강에 대한 근심으로 편안할 날이 없었소. 이를테면 정임이가 동경으로 간후 한 이태 동안이나 마음이 편안하였을까. 나는 아침이면 일어나 학교에 가서 오후 네 시까지 일을 보고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내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에 전력을 다하였소.

첫째로 아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편이 집을 떠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소. 그렇지마는 너무 내외가 함께만 있어도 또 충돌이 생기기 쉬운 것도 깨달았소. 더구나 아내가 몸과 마음이 건강치 못할 때에는 남편의 고심이 여간이 아닌 것도 체험하였소. 그렇지만 내 아내는 병자가 아니요? 그는 외마디 기침을 시작하고 오후에 가끔 신열이 나고 밤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사지가 쑤신다고 하고 짜증을 내고, 그러면서도 어린애는 안심이 안 된다 하여 유모도 안 대고‒‒‒‒‒이러한 병자가 아니요? 어떻게나 하면 이 아내를 편안하게 하여줄까. 만일 내 팔이나 내 다리 하나를 잘라서 아내의 몸과 맘을 편안히 할 수가 있다고 하면 나는 시각을 지체하지 아니하고 잘라 버릴 것이요.
『의사를 좀 보입시다.』하고 나는 참다못하여 진찰을 권하였소.
『의사는 왜 보라우? 어서 병이 들어서 죽었으면 시원하겠소?』하고 아내는 도리어 성을 내오. 원체 기승한 아내는 제가 병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승인하고 싶지 아니하였던 것이요. 그래서 부득이 나는 친한 의사 한 분을 청하여서 저녁을 대접하였소. 바로 형도 잘 아시는 Y 박사 말이오. 아내는 삼십 칠도 오분이나 되는 신열을 가지고도 몸소 만찬을 분별하였소. 가끔 기침이 날 때에는,
『아이구, 감기가 들어서.』하고 연해 변명을 하였소.
『부인 좀 쉬셔야겠습니다.』하고 Y 박사는 해쓱한 내 아내를 바라보면서,
『애기는 돌도 지났으니 유모에게 맡기시지요. 그리고 어디 가셔서 두어 달 편안히 쉬시지요.』하고 권하였소.


박사의 말에 아내의 낯빛은 아주 Y 핏빛을 잃어버렸소. 그리고 숨이 높아지는 것이 아무의 눈에나 보였소.
『어머니 손이 얼음장이오.』하고 순임이가 제 어머니 손을 만져 보고 걱정스럽게 말하였소. 이 장난꾼인 순임이년도 그때야 제 어머니가 심상치 아니한 것을 깨달은 모양이오. Y 박사의 말에 겁을 집어먹고 아내는 진찰을 받기를 허락하여서 저녁이 끝난 뒤에 Y 박사의 진찰을 받았소. Y 박사는 벌써 이 준비로 청진기와 검온기 등속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던 것이요.
아내의 가슴을 보고 난 Y 박사는,
『감기가 기관지염이 되었습니다. 좀 쉬시면 괜찮으시겠습니다. 요새 환절에 조심 아니 하시면 병이 중해지십니다. 네, 무얼 염려하실 것은 없지마는 그래도 지금 잘 조리를 하셔야지요. 글쎄, 이렇게 해 보시지요.』하고 Y 박사는 이윽히 생각한 끝에,
『애기도 인제는 젖 떨어질 때도 되었으니 어느 쌔니토리엄에 좀 가계시지요. 일본이라도 두어 달만 계시면 좋으실 것입니다.』이렇게 말하였소.
Y 박사가 돌아간 뒤에 내 아내는 마치 사형 선고나 받은 것처럼 울기를 시작했소.
『그럼 내가 폐병이란 말이지?』하고 아내는 미친 듯이 울었소.
『폐병은?』하고 나는 아내를 속이려 들었소. Y 박사가 대문 밖에 나서면서 날더러,
『상당히 중하시오.』하고 자기의 오른편 가슴을 가리켰소. 나는 그때에 다만 휘우하고 한숨을 쉬었소.


『그렇지마는 어린애는 어머니한테서 떼시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결핵이란 어른에게는 별로 옮는 것이 아니지마는 어린애에게는 반드시 옮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하고 Y 박사는 힘을 주어서 말하였소. 이 말을 들으니 더욱 가슴이 무거워지오. 희가 내 외아들이라고 해서, 또 만득자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지마는 내 집을 믿고 온 손님을‒‒‒‒ 종교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어린 손님 하나를 부모의 죄로 병이 들게 한다는 것은
차마 못 할 일이 아니요.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서 내 아내더러, 여보 희를 유모를 얻어 『맡기고 당신은 쉬시오. 그러다가 병이 점점 더하면 어찌하오?』하고 차마 희에게 병이 옮으면 안 되겠으니 쉬란 말은 못 하겠소.
『왜요? 내 병이 폐병이래요?』하고 내 아내는 눈을 크게 뜨고 묻소. 그는 희를 안고 앉아서 젖을 먹이고 있소.
『폐병이라고는 아니 합디다마는 그대로 두면 폐병이 될는지도 모른다고 합디다. 그럴꺼 아니요? 성한 사람도 어린애 젖을 먹이고는 못 배기는데 몸이 약한 사람이 어린애 젖을 먹이고 배기겠소. 또 돌만 지나면 젖을 떼 는 것이 아이한테도 좋답디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아내에게 폐병이라는 말을 알리지 않기로 결심하였소. 내가 일찍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본 일이 없는 사람인데 비록 이런 말이라도 속이는 것이 아닐까 해서 여간 마음이 거북하지를 아니하였소.
내 아내는 내 말의 뜻과 내 생각의 뜻과를 비교하는 모양으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희를 쳐들어 들여다보고,『희야, 엄마가 폐병이면 어떡하나. 엄마 병이 옮으면 어떡하나. 그렇기로 이 풋솜 같은 것을 남에게 어떻게 맡기나.』하고 흑흑 느껴 울기를 시작하오.


『왜 우시오? 울면 더 몸에 해롭지 않소?』하고 나는 아내를 위로하였소‒‒‒‒‒
『울지 마우. 두어 달만 정양하면 낫는다는 걸 무얼 그러우? 저, 신열 나리다.』
아무리 위로하여도 아내는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오. 소리까지 내어서 울게 되었소. 엄마가 우는 것을 보고 희놈도 으아 하고 울기를 시작하였소. 비록 말은 알아 듣지 못하여도 그 어머니의 슬퍼하는 것이 통한 모양이오.
『내가 희를 가까이해선 안 되지요?』하고 내 아내는 한 번 더 희를 꽉 껴안아 보고는 방바닥에 떼어 놓으려 하였소. 희는 바람이나 일듯이 엄마에게서 안 떨어지려고 울고 달라붙었소. 나는 마침내 터지려는 울음을 참지 못하여 마루로 나오고 말았소. 내 아내는 사람을 놓아 유모를 구하기 시작하고 일변 신문에 「유모 구하오」하는 광고를 내었소. 내 집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모 후보자가 들끓었소. 직업은 없고 살기는 어려운 때요, 게다가 엄동이 가까와 오는 때라 그들은 젖을 자본으로 과동할 시량을 얻으려는 것이요. 내 아내는 몸소 이 유모들의 선을 보았소. 어떤 사람은 늙어서 못 쓰고, 어떤 사람은 너무 젊어서 못 쓰고, 어떤 유모는 너무 모양을 내서 못 쓰고,또 어떤 유모는 너무 몸 거둘 줄을 몰라서 못 쓰고, 이런 흠 저런 흠 다 고르고 나면 그 수많은 후보자 중에 쓸 만한 유모가 별로 없었소. 그래도 내 아내는 사십당이 넘어서 낳은 첫아들이요, 막내아들을 아무러한 유모에게나 함부로 맡길 마음은 없었소. 그래서 오면 보내고 오면 보내고 하기를 아마 이십여 명은 더 하였을 것이요.
『유모 어디 골르겠소?』하고 하루 저녁에는 내 아내는 실망하는 듯이 한탄하였소. 그는 이틀 동안이나 많은 유모를 시험하기에 그만 진저리가 난 모양이오.


『글쎄 이거 봐요. 제 자식을 떼어 놓고 온 년이야 이 애를 보면 밤낮 제 자식
생각만 하지 아니하겠어요? 또 제 자식 죽이고 온 년의 젖은 먹이고 싶지 않고, 호랑이같이 흉악한 년의 젖도 먹이고 싶지 않고‒‒‒‒‒암만해도 유모는 못 얻겠어.』하고 아내는 제 누이하고 앉아서 놀고 있는 희를 보오.
세째날 쓸 만한 사람이 왔으나 피를 빼어서 검사하는 말을 듣고 달아나 버리고 네째날에 온 유모는 회충이 있으니 회충을 빼자고 했더니,
『별집을 다 보겠네. 회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담.』하여 엉지회가 빠지면 큰일난다고 달아나 버리고, 하다하다 못 하여 소아과에서 간호부로 있던 여자 하나를 데려다가 아이 보는 조수 하나를 붙여서 희를 기르기로 작정이 되었소.
잘 때에는 희도 엄마를 찾고 울고 엄마도 희를 찾고 울어서 며칠 동안은 밤만 되면 집안이 울음판이 되었소. 그러나 사람이란 희랍 신화에 있는 말과 같이 잊어버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희놈도 간호부를 아주머니라고 불러서 따르게 되고 아내도 희를 떼어 놓고 잘 수도 있게 되었소. 이렇게 희를 어머니에게서 떼는 사건이 일단락이 되어서 좀 마음을 놓으리만큼 되었는데, 이리하여 하루 이틀 마음을 펴고 내가 보는 학교의 일을 좀 볼까 할 때에 또 벼락이 내렸소.
『ナンテイニンキフビヨウスグコイオホヤマ(남 정임급병즉래대산)』이라는 전보가 떨어진 것이요.
내가 학교의 직원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니까 아내가 이 전보를 내게 보였소.
대산이라는 것은 동경 여자 고등 사범학교 기숙사 사감의 이름인 것은 아내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요.


『이 애가 무슨 병일까?』하고 내 아내는 물었소.
전보가 오전에 온 것을 곧 학교로 기별도 아니 하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무성의를 나는 원망하였소 만일 순임이가 . 동경에 가서 급한 병이 났다고 하면야 이럴리가 있으랴 하면 마음이 괴로웠소. 내가 이 전보를 받고 어떻게 놀라고 비통해하는 빛을 보였던지 아내는 도무지 말이없소. 예사 때 같으면 나는 아내에게 의논을 할 것이지마는 이런 급한 경우라 나는,
『밤차로 가 보아야겠소.』하고 선언을 하였소.
그러고 저녁상도 받는 듯 마는 듯 나는 내 손으로 짐을 싸 가지고,
『몸조심하시오.』하고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희를 한 번 안아 보고 잘 보아 주어서 체하거나 감기 들리지 말고 울리지 말라고 신신 부탁하고 정거장으로 나갔소. 순임이가 무슨 생각이났는지 정거장까지 따라나와서,
『아버지 언제 오세요?』하고 묻고, 차가 떠날 임박에,
『아버지 이번 길에 나 피아노 하나 사다 주세요.』하고 졸랐소.
『돌아댕기지만 말고 네 어머니 잘 위로해 드려!』하고 피아노를 사다 준다든지 아니 사다 준다든지 약속은 아니 하고 떠났소. 그러나 마음에는 순임에게 피아노를 하나 사 주고도 싶었소. 잘하나 못하나 내년이면 졸업인데 집에 피아노 하나 없는 제 마음이야 퍽 섭섭할 것을 동정하였소. 야마하 피아노면 오백원짜리부터 있지마는 순임의 눈에 그런 것이 들 리는 없고 적어도 이천원 돈은 들여야 순임의 비위를 맞추겠으니 딸의 아비 되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소. 찻 속에서 나는 순임을 생각해 보았소.

그년이 도무지 아비를 아비로 알지 아니하고
제 어미와 부동하여 아비를 헐기만 하는 것을 보면 괘씸하기도 하지마는 그래도 그것이 내 딸이 아니요? 내 첫 자식이 아니요? 자식 미워하는 아비가 어디 있겠소? 순임이년이 좀더 내 눈에 들게만 굴면야 아무런 짓을 하기로 음악과에 다니는 저를 피아노 하나야 안 사 주었겠소? 원체 그년이 나를 적대하니까 나도 가벼운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요. 순임이년 하는 일을 보구려. 아비가 먼 길을 떠난대도 집구석에 숨어 있고도 모른 척하고 있다가 피아노 하나를 조를 생각이 나서 정거장으로 주르르 따라나온 것을 나는 차 속에서 순임이년의 행사를 생각하고 혼자 웃었소. 아비의 생각에는 이런 것도 다 귀엽게 보이는 것이요. 동경에 가는 길로 나는 여자 고등 사범학교 기숙사를 찾았소. 때는 오전 여덟 시쯤. 오오야마라는 사람은 아직 집에서 돌아오지를 아니하고 어떤 일본 여학생이 나와서 접대를 하오. 나는 조선서 왔읍니다 남 『. 정임의 보호자입니다. 오야마 선생의 전보를 받고왔는데 남 정임의 병이 어떠합니까?』하고 물었소.
『네 그러십니까?』하고 그 여학생은 다시 공손하게 일본식으로 두 손을 다다미에 짚고 절을 하더니,
『남 정임 씨는 그저께 T 대학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갑자기 각혈을 하여서.』하고 동정하는 낯빛으로,
『잠간만 기다리십시오. 남 정임 씨와 한 방에 있는 동무를 불러오겠습니다.』하고 그 여학생이 일어나서 통통통 걸어간지 얼마만에 웬 양복 입고 키 큰 여학생 하나를 데리고 와서 내게 소개를 합니다. 나는 그 양복 입은 이의 골격을 보아서 이것이 조선 학생인 줄을 알았소.


『이 어른이 지금 조선으로부터 오신 어른이신데, 남 정임 씨 보호자시라고.』하고 그 양복 입은 여학생에게 나를 먼저 소개하고 다음에는 나를 향하여,
『이이가 긴 상이라고 남 정임 씨하고 한 방에 있는 이입니다.』하고 소개를 하오. 그리고는 내가 김이라는 여학생과 이야기하는 동안 그 일본 학생은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소.
『정임이가 어떻게 병이 났어요?』하고 내가 양복 입은 학생에게 물은즉, 그 학생의 대답은 이러하였소…….
『오래 불면증으로 잠을 잘 못 자고 애를 써서 몸이 좀 약해졌는데 그저께는
아침마다 하는 새벽 체조를 하다가 말고 갑자기 각혈을 하였습니다. 새빨간 피를 한컵은 더 토하였어요. 그래서 방에 들여다 뉘고 선생님께서 오시거든 입원을 시킨다고 하다가 의사가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위험하다고 그래서 사감 선생이 보증을 하고 T 대학 병원에 입원을 시켰읍니다.』
각혈이라니! 우리 정임이가 각혈이라니! 하고 나는 가슴이 설레고 앞이 캄캄해짐을 깨달았소. 지금은 각혈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병이 아닌 줄을 알았지마는 그때까지의 내 의학 상식으로는 각혈이라면 죽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요. 정임이가 죽다니! 이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이었소. 만일 정임이가 죽는다고 하면 세상이 온통 캄캄해질 것 같았소. 그렇게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아름다운 정임이가 꽃봉오리째로 떨어지다니! 이것은 가슴이 터질 노릇이었소. 나는 택시를 몰아서 T 대학 병원을 향하고 달렸소. 내가 오랫동안 있던 동경, 청춘의 꿈 같은 기억이 있는 동경의 거리를 보는지 안 보는지 몰랐소. 내 가슴은 놀라움과 슬픔과 절망으로 찼던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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